제I장 수출 대국 한국의 지속가능성
한국 경제는 2025년 역사상 처음으로 연간 수출액 7천억 달러를 달성하여 세계 6위의 수출 강국이 되었다. 이는 한국 경제가 전후 최빈국에서 출발하여 70여 년 만에 이룩한 압축 성장의 결과로서 제조업 기반 수출주도형 발전 전략이 매우 성공적인 성과를 달성하였음을 보여준다.
한국 경제는 수출 강국으로의 이런 성장 과정에서 제조업 강국이던 일본과 독일을 따라잡거나 대등한 위치로 성장하였다. 일본이 세계를 지배하던 철강,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가전, 반도체, 디스플레이, 모바일폰, 배터리 산업을 따라잡았으며, 독일의 자동차, 잠수함, 방산을 이제 추월하고 있다. 이런 제조업 성장과 이를 기반으로 한 수출 성과는 한국의 세계적 국력의 상승으로 이어졌다. 즉, 세계 국력 순위 6위로서 경제력(수출)과 군사력(세계 5위), 그리고 글로벌 혁신 지수(세계 4위), 기업가 정신(6위), 문화 경쟁력(7위)의 명실상부한 강대국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이런 화려해 보이는 외형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와 무역 구조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점차 제기되고 있다. 수출 규모의 확대가 곧바로 성장의 질적 안정성이나 장기적 성장 경로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한국의 무역과 통상을 둘러싼 국제 환경은 본질적으로 과거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글로벌 교역 질서는 더 이상 자유무역의 확대라는 단선적 경로를 따르지 않고 있으며, 지정학적 경쟁 심화, 기술 패권을 둘러싼 국가 간 전략의 충돌과 경쟁,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환경 규범 강화라는 세 가지 구조적 메가 트렌드(mega trend)가 중첩되며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변화는 단순한 경기 순환적 충격이나 일시적 교역 위축이 아니라, 세계 무역 시스템 자체의 작동 원리를 변화시키는 구조적 전환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형 무역·통상 전략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특히 미·중 전략 경쟁의 장기화로 인한 교역 분절화(trade fragmentation)는 한국과 같은 개방경제에 복합적인 어려움을 야기하고 있다.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s)의 효율성에 의존하며 성장해 온 한국 경제는 공급망의 블록화와 기술·안보 연계형 통상 규범의 확산 속에서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여기에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AI) 등 첨단 산업을 둘러싼 기술 주권 경쟁은 무역 정책과 산업 정책, 나아가 안보 전략을 분리하기 어렵게 하고, 통상 정책의 성격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또한 탄소중립(carbon neutrality)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환경 규범의 강화는 한국 수출 구조의 지속가능성에 또 다른 구조적 압력을 가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비롯한 환경 기반 통상 규범은 시장 접근 자체를 좌우하는 핵심 제도로 자리 잡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산업 구조 전환과 기술혁신을 동반하지 않는 한 수출 경쟁력 자체가 손상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대외 환경 변화 속에서 한국 무역의 구조 또한 구조적 취약성을 보이고 있다. 수출시장과 수출 품목의 높은 집중도, 일부 주력 산업에 대한 과도한 의존, 중간재 중심의 글로벌 분업 구조 고착화 등은 외부 충격에 대한 회복력(resilience)을 제약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수출 규모는 확대되었지만, 성장의 변동성은 오히려 확대되고 있으며, 무역 수지와 성장률 간의 괴리 또한 점차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지속 가능한 한국형 무역·통상 전략”의 개념을 한국 경제의 미래 경로를 규정하는 핵심 분석 틀로 재정립할 필요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란 단기적 수출 실적의 유지나 일시적 시장 대응 능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미래 성장 동력의 내생적 창출 능력, 구조 변화에 대한 적응 능력(adaptability), 그리고 외부 충격에 대한 회복력(resilience)을 포괄하는 장기적 개념이다. 다시 말해, “지속 가능한 무역·통상 전략”이란 주어진 글로벌 환경 속에서 단순히 생존하는 전략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구조적 변화를 활용함으로써 새로운 성장 경로를 개척하고자 하는 전략을 의미한다.
한국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구조적 전환의 기회를 잘 극복해 왔다. 중화학공업화 정책을 통해 산업 구조를 고도화하였고, 외환위기 이후에는 금융·기업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성장 체제를 재편해 왔다. 그러나 현재 직면한 도전은 기술 패러다임의 전환 속도, 통상 규범의 복합화, 안보와 경제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조건 속에서 과거의 경험을 단순히 반복하거나 연장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한국형 발전 전략의 역사적 DNA를 재해석하고, 이를 미래 지향적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런 문제의식 하에서 여기에서는 “지속 가능한 한국형 무역·통상 전략”을 과거, 현재, 미래의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과거에서는 한국형 발전 모형의 형성과 성공 요인을 재평가함으로써 현재 전략의 제약과 가능성을 규명하고, 현재에서는 글로벌 통상 환경의 구조적 리스크와 한국 무역 구조의 취약성을 진단하며, 미래에서는 초격차 기술과 산업 전환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지속 가능 성장 경로를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